과정

광장은 2021년 9월부터 지금까지 약 2년 넘게 작업중인 서체입니다. 처음 작업하는 한글 폰트여서 이런저런 욕심을 가지고 작업했더니, 많은 고민을 더하고 더하면서 많이 헤맨 것 같습니다. 여기서 그 고민의 과정을 대략적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전체 기획과정의 1/3 정도를 볼 수 있는 일러스트 파일

기획.

방향 설정

광장은 한글타이포그라피학교 이용제 선생님의 활자디자인 수업을 통해 기획­하였습니다.

맨 처음 활자디자인 수업을 듣기 시작한 것은 한글꼴 디자인에 대한 오랜 흥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처음 듣기 시작했을 때 명확히 어떤 폰트를 만들고 싶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수업에서 기획부터 완전히 새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옛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왕의 어필에서 나타나는 진중한 분위기를 갖는 한글 폰트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뼈대와 획.

뼈대 작업

꽤나 많은 헤맴의 과정 끝에, 광장의 인상에 맞는 뼈대를 선정했습니다. 이 단계에서 한번 아주 이상한 길로 빠지기도 했었는데, 치열한 내적갈등 끝에 원하는 방향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최종적으로 한성체를 뼈대로 선정한 뒤, 뼈대를 추출했습니다. 한성체가 사용되었던 신문, 잡지의 스캔본을 바탕으로 뼈대를 땄고, 몸선을 정리했습니다. 정리한 뼈대로 글자의 기준크기나 무게를 정했고, 초기 글자 스케치에서 기초가 되었습니다.

한성체 뼈대 정리 작업 화면

작업 초기 단계여서 이리저리 많이 헤맸지만, 일관된 규칙을 가지고 꾸준하게 작업하려고 노력했고, 나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뼈대 작업은 그렇지만……

획 디자인, 혼돈기

어려웠던 것은 획 모양 디자인이었습니다. 한자 어필의 획 모양을 보면서 여러 디자인 시안을 내보았지만, 대부분의 글자는 붓으로 쓴 것 같지 않고, 인위적이고 어색했습니다. 이 글씨 저 글씨에서 임의로 획을 선택해서 조합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획 스케치 과정. 스케치 할 때는 재미있어서 이것저것 마구 그렸지만 그 결과는……

“경로를 재 탐색합니다.”

획을 그리다보니 명확한 방향이 아직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로 갔다가 저기로 갔다가 하면서 꼬였던 실을 풀기 위해, 한번은 진행하던 작업을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이후의 작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찬찬히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원하는 인상을 형용사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상상한 서체의 쓰임을 명확히 하고, 인상과 쓰임에 맞는 획을 다시 리서치했습니다.

폰트 인상 설정을 위한 단어 찾기와, 획 디자인을 위한 자료 정리

이때 찾은 것이 세조임금 한자 어필이었습니다. 왕이 쓴 글씨, ‘어필’에서 진중함과 단단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고, 명필이라고 인정받는 어필을 찾아, 그 중에서 바랐던 인상이 가장 잘 느껴지는 어필을 골랐습니다.

세조임금 한자 어필 스터디 자료

그리고 어필의 획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그 원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획의 위치나 길이에 따라, 붓이 어느 정도의 힘으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움직였을지 상상하며, 규칙을 찾아나갔습니다.

다만 이 획 디자인 단계는 이 시점에서 한 번에 완성된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도 조금씩 수정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획은 보면 볼수록 보이는 것이 많아져서, 수정을 멈추기가 참 어려운 부분인 듯합니다.

글자 파생과 다듬기.

획 모양을 잡아나가면서 글자도 늘려갔습니다. 200~300자 정도를 그렸을 때는 대략적인 글자 구조와 획 모양이 갖추어졌고, 이후 더 빠르게 글자를 늘렸습니다. 글자를 늘리면서도 획 디자인은 계속해서 다듬었고, 활자로서의 덕목인 글자 무게, 공간, 윤곽, 힘 등 전반적인 모습도 고쳐갔습니다.

라틴, 숫자, 문장부호.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라틴 알파벳과 숫자, 그리고 일부 문장부호는 2023년 2월부터 타이포학교에서 김초롱 선생님의 라틴타입디자인 수업에서 기획하고 디자인했습니다. 한글 폰트를 위한 라틴 알파벳 디자인을 기획했기 때문에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완성으로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방향 설정

라틴 알파벳 디자인에서의 주안점은, ① 광장과 디자인 맥락이 유사해야 하며, ② 인상도 유사해야 하고, ③ 세로쓰기로 섞어짰을 때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따라서 (앞 장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글자 구조는 올드스타일을 바탕으로 어센더와 디센더를 짧게 조절하고, 가로·세로 획의 굵기 차이는 크지 않게 했습니다.

획 디자인

많이 고민했던 부분은 이 부분입니다. 라틴 알파벳의 디자인은 펜글씨에서 왔지만, 광장의 한글 디자인은 붓글씨에서 왔습니다. 두 도구 사이에서 표현을 절충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펜과 붓으로 휴머니스트 캘리그라피를 반복해서 써보기도 했고, ‘붓으로 쓴 알파벳’을 컨셉으로 하는 다른 라틴 알파벳들을 참고하면서 디자인을 그렸습니다.

붓과 펜으로 써본 라틴 알파벳. 모양은 어색하지만 획이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하고자 했다.

한글 디자인과의 통일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광장의 한글 디자인에서 사용했던 획 디자인이나 선의 곡률을 따오기도 했습니다.

라틴 알파벳 작업과정

알파벳은 그렇게 하나하나 그려나갔습니다. 알파벳 소문자부터 시작해서, 대문자와 숫자를 그린 뒤, 일부 문장부호를 그렸습니다.

글자를 다 그린 뒤, 사이드베어링도 맞추고, 커닝을 조절했습니다. 알파벳끼리의 커닝, 알파벳과 일부 문장부호끼리의 커닝을 설정했고, 가로쓰기와 세로쓰기에서 모두 작동하도록 세팅했습니다.

그리고 fi, ffi, fl, ffl, Th 등의 표준 합자를 추가하여 더욱 고른 자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커닝 조절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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